피터 해깃을 추모하며
피터 해깃(Peter Haggett, 1933년 1월 24일 ~ 2025년 2월 9일)이 사망했다. 지난 번 브라이언 베리(Brian J. L. Berry)의 경우는 전용완 교수 덕택에 부고를 일찍 접할 수 있었지만, 피터 해깃의 영면 소식은 몇 주 전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 권정화 교수님으로부터 듣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브라이언 베리가 미국의 정량적 지리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피터 해깃은 영국의 정량적 지리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양 대륙을 대표하던 위대한 지리학자들이 한 달 간격으로 우리의 곁을 떠나간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소멸이 마치 어떤 시대의 종말로 다가올 만큼 그들의 족적이 한 치의 다름도 없이 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학사, 특히 공간과학으로서의 지리학의 전통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유명한 다이어그램(?)에 익숙할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두 권의 책을 겹쳐서 촬영한 것인데, 맨 왼편은 다이어그램의 원형이 실린 Locational Analysis in Human Geography (Peter Haggett, 1965, p.18)의 해당 페이지이고, 오른편의 다이그램은 앤드루 클리프(Andrew D. Cliff), 앨런 프레이(Allan Frey)와 함께 저작한 왼편 책의 2판에 실린 수정본이다(1977, p.7).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1판에서는 이동(movement), 네트워크(network), 노드(node), 위계(hierarchy), 표면(surface)이던 것이, 2판에서는 이동이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바뀌고, 확산(diffusion)이 첨가되어 있다. 이 두 권은 책을 Amazon에서 중고책으로 구입하고 몹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1판도 그렇지만 2판에 수록된 그래프, 다이어그램, 지도는 정말로 예쁘다.
그의 일대기와 업적에 대해서는 평생을 봉직한 브리스톨 대학(University of Bristol) 지리과학부(The School of Geographical Sciences)의 후배 교수들이 The Geographical Journal에 기고한 글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가 1972년에 저작한 Geography: A Modern Synthesis를 실질적인 은퇴 이후인 2001년에 증보 발간한, 크면서 두꺼운 책 Geography: A Global Synthesis를 언젠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근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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